1788년 조선 — 서학 확산과 사상 충돌의 전조
1788년은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이 해를 전후로 서학(西學), 즉 서양 학문과 천주교 교리가 한양과 지방 지식인층, 그리고 평민층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 대규모 박해가 일어나기 전이었지만, 서학의 사상은 유교적 가치관과 충돌하며 조정과 학계, 그리고 민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정조 치세 중반부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학문과 문화가 융성하고, 과학 기술의 수용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러나 외래 사상에 대한 보수파의 불안과 경계심은 이미 커지고 있었고, 그 불씨는 몇 년 후 진산 사건(1791)과 신유박해(1801)로 폭발하게 된다.
서학의 유입과 확산
서학은 주로 청나라를 왕래하던 사신과 상인들, 그리고 북경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을 통해 유입되었다. 이들은 천주교 교리서, 과학서, 천문학·지리학 서적을 가져왔고, 일부 지식인들은 이를 번역·연구하여 조선 사회에 소개했다.
특히 정약용, 정약전 형제를 비롯한 남인계 실학자들은 서학의 합리주의와 평등사상에 주목했다. 그들은 서학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사회 개혁과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보았다.
“서학은 하늘을 섬기는 법이요, 백성을 다스리는 이치이다.” — 정약용
유교 질서와의 충돌
서학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조상 제사 거부는 유교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조선 사회에서 제사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가문과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예법이었다. 이에 따라 보수적 유학자들은 서학을 ‘패륜 사상’으로 규정하고, 배척 운동을 전개했다.
조정 내부에서도 서학에 대한 태도는 엇갈렸다. 정조는 서학의 과학적·실용적 측면에 관심을 보였지만, 종교적 교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는 훗날 박해와 수용이 반복되는 복잡한 흐름의 출발점이었다.
1788년의 특징적 사건
1788년에는 북경을 다녀온 사신단이 새로운 천문학 기기와 지도, 그리고 천주교 관련 서적을 다수 반입했다. 이 서적은 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복사·배포되었고, 일부는 지방까지 전파되었다.
또한 이 해에는 한양과 경기도 일대에서 서학 서적을 읽는 모임이 비공식적으로 열렸으며, 평민과 상민 출신의 개종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질서에 대한 작은 균열이었지만, 곧 더 큰 충돌로 이어졌다.
“하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 당시 천주교 교리서 『천주실의』
사회적 반응과 논쟁
서학의 확산은 사회 각계에서 다른 반응을 불러왔다. 젊은 학자들과 개혁파 관료들은 서학을 신지식으로 받아들이며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다수의 유림과 보수파는 서학이 군신·부자의 윤리를 해친다고 비판했다.
지방에서는 서학을 믿는 이들이 몰래 모임을 가지거나, 은밀히 기도문과 찬송을 외우는 사례가 나타났다. 이는 훗날 박해 속에서 형성될 비밀 공동체의 초기 형태였다.
국제 정세와 파급
1788년의 서학 확산은 조선 내부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중국 북경의 서양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서학에 관심을 보이는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적으로 서적과 교리를 전파했다. 이러한 국제적 연결망은 훗날 조선 천주교회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당시 한양의 일부 양반 가문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해 서학 서적을 비밀리에 구입해 읽혔다. 겉으로는 유교 경전을 공부하게 하면서, 실제로는 서학의 과학 지식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접하게 한 것이다.
또한 일부 관료는 서학을 탄압하라는 상소를 올리면서도, 뒤로는 천문학 기기와 서양 지도를 구입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는 당시 서학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실용 지식과 권력 전략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의의
- 조선 사회에 서학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
- 유교 질서와 외래 사상의 첫 대규모 충돌
- 훗날 진산 사건과 신유박해의 사상적 배경 형성
- 조선 후기 국제적 지식 교류의 중요한 사례
1788년 주요 사건 연표
| 연·월 | 사건 |
|---|---|
| 1788.2 | 북경 사신단, 서학 서적과 천문 기기 반입 |
| 1788.4 | 한양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학 서적 복사·배포 |
| 1788.6 | 경기도·충청도 일부에서 서학 모임 보고 |
| 1788.9 | 보수파 유림, 서학 탄압 상소 제출 |
| 1788.12 | 지방에 서학 교리 전파 확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