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수립되었습니다. 이날은 일제강점기 35년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지 3년 만에, 한반도 남쪽에서 민주공화국의 체제를 갖춘 국가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단순한 정치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민족의 자주 독립과 헌법적 질서 수립을 의미했습니다.
광복 이후 혼란과 미군정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한반도는 미·소 양군의 군정하에 들어갔습니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점령했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남한은 미군정(USAMGIK)이 통치했으며, 이 기간 동안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통일정부 수립 여부였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소 공동위원회를 통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후 통일정부를 세우기로 했지만, 냉전의 심화로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UN의 개입과 남한 단독 총선
1947년 9월,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에 상정했습니다. UN은 한반도 전역에서 자유 총선을 실시하라고 권고했지만, 소련은 북측 지역의 UN 조사단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이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으며, 헌법 제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7월 17일 제헌헌법이 공포되었고, 7월 20일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48년의 정부 수립은 분단 현실 속에서도 헌법과 국가 체제를 세운 역사적 결단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은 “이날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36년간의 식민통치를 끝내고 자주독립국이 된 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초대 내각이 구성되고, 국기·국가·국호가 공식 확정되었습니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국기는 태극기로, 국가는 애국가로 확정되었으며, 정부의 최고 규범으로 제헌헌법이 자리 잡았습니다.
북한의 대응과 분단의 고착화
남한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의 분단은 사실상 고착화되었고, 이후 남북한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대립 체제에 들어갔습니다.
정부 수립의 의의
- 헌법에 근거한 민주공화국의 탄생
-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법적·외교적 지위 확립
- 분단 상황 속에서도 자주적 국가 체제 수립
비록 한반도 전체의 정부가 아닌 남한만의 정부였지만,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법적 기틀이 마련된 날이자,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 인정받은 날이었습니다.
“정부 수립은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국가의 틀을 세우는 필수적인 출발점이었다.”
1948년 전후 주요 사건 연표
연도/날짜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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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8.15 | 광복, 미·소 양군 진주 |
1945~1948 | 미군정 통치 |
1947.9 | 미국, 한반도 문제를 UN에 상정 |
1948.5.10 | 남한 단독 총선 실시 |
1948.7.17 | 제헌헌법 공포 |
1948.7.20 |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선출 |
1948.8.15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 |
1948.9.9 |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