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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거문도 사건과 조선의 국제 외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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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거문도 사건과 조선의 국제 외교 위기

1885년 거문도 사건과 조선의 국제 외교 위기

1885년,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그리고 영국이라는 열강들 사이에서 심각한 외교적 위기를 맞이했다. 그 중심에는 전라남도 거문도가 있었다. 거문도 사건은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 영토인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한 사건으로, 2년여간 지속되며 조선의 국제적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19세기 후반은 ‘제국주의 경쟁 시대’였다. 영국은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며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러시아는 남하 정책을 추진하며 극동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를 거점으로 조선과 대한해협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이는 영국의 인도 항로와 중국 남부 진출 계획에 위협이 되었다.

1884년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청나라와 일본의 대립이 한층 심화되었고, 이 틈을 타 러시아는 조선과 비밀 협상을 시도했다. 영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했고, 러시아의 군함이 거문도에 기항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1885년 4월 영국 해군은 선수를 쳐 거문도를 점령했다.

“거문도의 군사적 가치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시아 전체의 세력 균형을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 당시 외신 보도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 앞바다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로, 동아시아 해상 교통로의 핵심 지점이었다. 영국은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 명명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군사 거점화 작업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주권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지만, 영국은 이를 ‘러시아 남하 저지’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했다.

조선 정부는 청나라를 통해 항의했으나, 당시 외교권은 사실상 청나라에 종속되어 있어 독자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고종은 이 사건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청, 영, 러 3국 간의 협상을 추진했으나, 실질적인 발언권은 청나라가 쥐고 있었다.

국제 정세와 외교 협상

거문도 사건은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민감한 균형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영국은 인도와 홍콩,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해상로를 사수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했고, 러시아는 이에 공식적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청나라는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다.

결국 영국과 러시아는 조선 문제를 놓고 직접 협상을 벌였고, 1887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 협정’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영국이 거문도에서 철수하는 데 합의했다.

“우리는 한 섬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안전한 길목을 지키려 한 것이다.” — 영국 외무장관 그랜빌 경

사건의 여파

거문도 사건은 조선 정부와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비록 영국이 철수했지만, 이 사건은 조선이 얼마나 외세의 침탈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내에서는 자주적 외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개화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국제법과 해양 방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한 거문도 사건은 훗날 대한제국 시기의 해군력 강화 논의와 연결되었으며, 일본 역시 이 사건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조선 해역 장악 계획을 구체화하게 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당시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군과 의외로 평화롭게 공존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영국군은 주민들의 생필품을 구매하고,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 시설 건설과 식량 수급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으며, 일부 주민은 어업 구역이 제한되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이 시기에 서양 의술과 물품이 처음으로 거문도를 통해 조선 본토로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 거문도에서 근무한 영국 군의관이 몇몇 조선인 환자를 치료했다는 기록은, 의도치 않은 문화 교류의 한 단면이었다.

역사적 의의

  • 조선의 국제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
  • 열강의 세력 균형 속에서 조선이 외교적 카드로 활용된 사례
  • 해양 방위와 자주 외교의 필요성을 일깨운 계기

1885년 거문도 사건 연표

연도/날짜 사건
1885.4 영국 해군 거문도 점령, ‘포트 해밀턴’ 명명
1885~1887 영국군 주둔, 방어진지와 군사시설 설치
1887.2 상트페테르부르크 협정 체결, 영국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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