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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조선 — 세도정치 하의 조정과 민생, 고립 속의 조용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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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조선 — 세도정치 하의 조정과 민생, 고립 속의 조용한 위기

1835년 조선 — 세도정치 하의 조정과 민생, 고립 속의 조용한 위기

1835년의 조선은 안동 김씨 세도가문의 장기 집권이 계속되던 시기였다. 헌종이 즉위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정 운영의 실권은 어린 국왕이 아닌 외척 세력에게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큰 전쟁이나 대규모 변란이 없었으나, 내부적으로는 행정 부패와 민생 피폐가 누적되고 있었다. 이 시기의 고요함은 사실상 격변 전야의 ‘숨 고르기’였다.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세도정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주요 관직은 가문 내부 인물들로 채워졌고, 지방 수령 자리조차 매관매직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관리는 임기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재물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헌종 즉위와 세도정치의 고착

1834년 효명세자가 요절한 뒤,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했다. 당시 헌종은 겨우 8세였기 때문에, 외할머니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맡았다. 순원왕후는 안동 김씨 가문의 인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안동 김씨 세력의 권력 독점은 더욱 심화되었다. 1835년은 이러한 정치 구조가 완전히 고착되는 시점이었다.

조정의 인사권은 안동 김씨 일가가 장악했고, 국왕의 재가 없이도 관직 임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지방관 임명도 마찬가지였다. 충청도 한 고을 수령 자리는 특정 세도가문과 혼인한 관리에게 돌아갔는데, 그는 부임 첫 해에 세금 부과 기준을 변경해 단기간에 막대한 세수를 올렸다.

“조정의 일은 가문의 일이고, 나라의 곡식은 가문의 곳간에 들어간다.” — 당시 유생의 상소

삼정의 문란과 백성의 삶

1835년에도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은 심각했다. 전정에서는 토지 소유와 관계없이 세금이 부과되었고, 실제 경작량보다 높은 세액이 책정되었다. 가뭄이나 홍수로 수확이 줄어도 세금은 동일하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빚을 져서라도 세금을 내야 했다.

군정의 부담도 컸다. 군포를 내야 하는 장정이 줄자, 부녀자와 노약자에게까지 군포를 부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가난한 가구는 아이를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 군포 부담을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양자세’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세금이 부과되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

환곡은 원래 기근 시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 후 갚도록 한 제도였다. 하지만 1835년 환곡은 사실상 고리대금에 가까웠다. 일부 지역에서는 원곡의 절반에 달하는 이자를 요구했고, 갚지 못하면 가축이나 토지를 빼앗겼다. 이 과정에서 관아 아전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다.

“곡식은 빌려준 것이 아니라, 백성의 목줄을 쥐려는 올가미였다.” — 당시 민간의 비유

민심의 변화와 소규모 저항

큰 봉기는 없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소규모 저항이 나타났다. 경상도 북부에서는 부당한 세금 고지서를 찢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전라도 남부에서는 농민들이 관아 앞에서 모여 환곡 이자 인하를 요구했다. 비록 이들은 관군의 출동으로 흩어졌지만, 민심 속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유랑민도 늘어났다. 빚을 갚지 못한 농민들이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바닷가나 산간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화전민이 되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으나, 척박한 토양 탓에 생활은 안정되지 않았다.

1835년의 국제 정세와 조선

국제적으로는 청나라가 여전히 동아시아 패권을 쥐고 있었지만, 서양 세력의 동아시아 진출 움직임이 서서히 감지되던 시기였다. 영국은 이미 인도와 동남아를 장악했고, 일본은 쇄국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외국 상선과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선은 여전히 청에 대한 사대 외교를 유지하며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멀리서 오는 바람은 아직 미풍이지만, 문을 닫은 집에는 더 크게 울린다.” — 후대 사관의 기록

비하인드 스토리 — 기록되지 않은 구휼

공식 기록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 시기 일부 양반과 유력자들은 자발적으로 기근 구휼에 나섰다. 전라도의 한 고을 양반은 곡식을 모아 ‘동곡계’를 조직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무이자로 빌려주었다. 경상도의 한 부유한 상인은 쌀과 보리를 사들여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후일 그 지역에서 그를 기리는 사당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의의

  • 헌종 초기, 세도정치의 완전한 고착
  •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민생 파탄 심화
  • 소규모 저항과 민심 변화의 전조
  • 국제 정세 변화에 둔감한 조선의 한계

1835년 조선 주요 사건 연표

연도/날짜 사건
1835.1 안동 김씨 가문, 주요 관직 인사 독점
1835.4 경상도 일부 지역, 부당 세금 고지서 파기 사건
1835.6 전라도 농민, 환곡 이자 인하 요구 시위
1835.9 충청도, 화전민 증가와 인구 이동
1835.11 민간 주도의 동곡계 구휼 활동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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