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선 농민 생활

(10)
1808년 조선 — 순조 치세와 세도정치의 서막, 일상의 균열과 국가의 징후 1808년 조선 — 순조 치세와 세도정치의 서막, 일상의 균열과 국가의 징후1808년의 조선은 눈에 띄는 전쟁도, 왕조를 뒤흔드는 대사건도 없었다. 그러나 표면의 고요 아래에는 구조적 피로가 축적되고 있었다. 정조 서거(1800) 이후 왕권의 추동력이 약해지면서, 국정의 핸들은 천천히 외척 가문으로 미끄러져 갔다. 순조는 즉위 8년차였지만 나이와 경험의 한계, 그리고 조정 내 역학 탓에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어려웠다. 이 해는 ‘세도정치의 서막’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민생·행정·외교 전반에 조용한 금이 번져가던 시기였다.이 글은 1808년을 사건 중심이 아니라 ‘상태’ 중심으로 해부한다. 왜 하필 이때, 어떤 방식으로 균열이 커졌는가. 조정의 인사 구조, 삼정의 문란 전조, 지역별 ..
1859년 조선 말기 — 삼정의 문란과 사회 불안의 누적 1859년 조선 말기 — 삼정의 문란과 사회 불안의 누적1859년의 조선은 외형적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안이 쌓이고 있었다.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으며, 농민과 서민층의 생활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이 시기의 구조적 모순은 훗날 1862년 진주농민항쟁과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이 되었고, 조선이 개항기에 외세 압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배경이 되었다.삼정의 문란삼정은 조선의 기본 행정 재정 제도인 전정(토지세), 군정(군포 부과), 환곡(빈민 곡식 대여)을 말한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이 제도들은 본래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부패 관리들의 사리사욕 수단으로 변질되었다.전정에서는 토지를 실제 경작 여부와 상관없이 과세했고, 없는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