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국 관계 (2) 썸네일형 리스트형 1866년 병인양요와 제너럴셔먼호 사건 — 조선의 외세 충돌과 쇄국정책 강화 1866년 병인양요와 제너럴셔먼호 사건 — 조선의 외세 충돌과 쇄국정책 강화1866년은 조선이 서양 열강과 본격적으로 충돌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병인박해로 촉발된 프랑스의 무력 침공, 즉 병인양요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같은 해에 발생했다. 이 두 사건은 조선의 대외 정책, 특히 쇄국정책의 방향을 결정지었으며, 이후 수십 년간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병인박해와 프랑스의 반격흥선대원군 집권기 조선은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를 강력히 거부하며 ‘쇄국’을 국시로 삼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서학(천주교)이 조선에 유입되었고, 이를 통해 서양과의 접점이 점차 확대되었다. 특히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은 비밀리에 조선에 잠입해 포교 활동을 벌였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 1871년 신미양요와 조선의 외세 대응 1871년 신미양요와 조선의 외세 대응1871년은 조선이 서양 열강의 군사적 압박과 직접 맞닥뜨린 해였다. 이 해 6월, 미국은 군함을 앞세워 강화도 해역에 진입했고, 조선군과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신미양요’로 불리며, 조선과 미국 간의 최초의 무력 교전이자, 조선의 쇄국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역사적 순간이었다. 사건의 명칭에서 ‘신미’는 1871년의 간지, 즉 신미년에 벌어진 일을 뜻한다.사건의 배경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미국과 조선의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가 무역을 시도했으나, 조선 당국은 이를 불법 침입으로 간주했다. 선박은 결국 조선군에 의해 불태워졌고, 선원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미국이 조선에 무력 보복을 .. 이전 1 다음